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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론  Critics

 

이과수 폭포 _ Iguacu Falls _ Mixed media on Canvas _ 162.2 x  130.3 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자연에서 생동하는 생명의 소리

- 협화의 법칙에 의한 우주의 진리를 묘사하는 살아 있는 생명의 소리 -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예술미를 조형적인 감각미라고 한다면 자연미는 또 다른 미감을 가지고 있다. 자연은 절대적인 질서가 있으며 자연에 존재하는 이형(理型) 자체가 곧 자연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신비하게 보는 것이나 이상적으로 미화하는 것은 본질적인 미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지만 자연미와 예술미는 미술이 존재하는 한 인류생활에서 분리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은 감성과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감성(感性·Sensibility)은 감각적 기능으로써 시간성과 공간성에 관계되는 직관과 감응으로 분류하여 선험적인 지성으로부터 추출된 개념을 판단기준으로 한다. 반면, 이해(Understanding)란 객체의의(客體意義)에 부합한 의미로써 사물의 존재, 본질의 내재적 관련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김순옥은 이러한 감성과 이해의 기준에서 자연의 진리를 예술로 정의하는 가운데 존재하는 생명의 원천을 작품의 표상으로 삼고 있다.


자연에 있어서의 생명은 무한하다. 그 중에서도 빛과 소리가 근원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빛을 다 볼 수없고 소리를 다 들을 수 없다. 빛은 곧 자연의 색이며 인간이 볼 수 있는 한계는 적외선(780nm)에서 자외선(380nm) 사이를 가시광선(visible light)이라고 말한다. 또한 20∼20,000Hz 즉, 10옥타브(Octave)만이 들을 수 있는 한계인데 이를 가청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해서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범위가 무한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미약한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범주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의 능력이며 김순옥 작품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장대한 폭포 앞에 서면 이와 같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빛을 볼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것을 김순옥은 《생명의 소리》라고 말한다.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수류(水流)에서 가청권을 넘어서는 소리가 생성되며 동시에 물 속으로 가라앉으며 사라진다. 또한 작렬하는 태양의 빛은 이러한 폭포수와 만나 광의적인뀈義的な 색을 산출해냈다고 영속적인 현상을 지탱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의 원칙이다.


특히 이과수폭포, 나이야가라폭포. 대한민국의 폭포를 새로운 구도와 재료와 색상으로 다양하게 묘사하는 가운데 처음 시도한 황금색 폭포는 보는 각도에 따라 황금색이거나 태양의 현란한 색으로 변화를 가져오고 빛의 반사에 의해 물빛 또한 화려하게 현출(顯出)한다. 이러한 황금색과 빨강 색의 현상에 대하여 김순옥은 “정열과 에너지를 한층 고조시켜 강한 느낌을 담았다.”고 말한다.
자연이란 거대한 광경 속에서 전신의 감각을 통해 감탄하는 생각을 포착할 수 있는 존재의 무한성이다. 보통 풍경이나 꽃과 같은 정물의 아름다움을 자연미라고 생각하지만 자연을 대상의 영역에서 보는 이 파악은 일반적인 것이다. 한 다발의 코스모스 꽃을 손에 들고, 그 모양에 주목하여 「예술이다」라고 감탄하는 것과 같다. 자연대상을 예술적으로 본 미이다. 그러나 참된 자연미는 자연대상을 자연적으로 보는 아름다움이 아니면 안 된다.


자연에서 보았을 때는 형(形)의 한정을 극복할 수 없다. 형을 지향하는 우리의 형성적(形成的), 혹은 인식적인 의지가 정지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우리의 의지는 존재의 충실상(忠깒相)에 직접 마주 보게 되므로, 순수한 체험형태가 실현되는 셈이다. 말하자면 김순옥의 폭포를 보면서 이것이 일반적인 시각적인 미인가 예술의 미인가 자연의 미인가를 생각했을 때 이미 시각적인 미나 예술의 미를 초월하는 자연 본연의 미를 보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김순옥의 작품은 동양화의 관념산수처럼 화가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경관이 아니라 자연미와 예술미를 동시에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자연을 상상력으로 그린다는 것은 맥 빠진 맥주와 같다. 상상력이란 그만큼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기 쉬운 것이다. 김순옥의 폭포는 관광객이 본 단순한 시각적 폭포가 아니라 파라과이 이민생활에서 직접 보고 느낀 미적 감성에 의해 정립된 표상(表象)이다.


“이과수폭포를 비롯하여 중남미의 장대하고 장쾌한 폭포를 보면서 처음에는 공포감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대중의 눈에서 화가의 시각적 판단으로 전위되면서 따뜻함도 느끼고, 속도감도 느끼면서 자연의 이치를 깨달았고 이러한 감성적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김순옥은 이민생활 중에 중남미의 이과수폭포나 나이야가라폭포를 보고 느꼈던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또한 폭포뿐 아니라 광의적인 표현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중남미에서 생활하면서 역사 속에 사라져 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신을 묘사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소나무, 설악산, 삶의 터전, 밭갈이와 같은 전통소재를 다루면서 생활집기가 부닥치는 소리, 메주가 뜨는 쾌쾌한 냄새, 가마솥에 타 들어가는 군불냄새, 새마을 운동으로 사라진 초가지붕, 솔 향이 물신 풍기는 시골길, 마치 어디선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만 같은 대한민국의 소리를 캔버스 위에 표현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물묘사이다. 대부분 풍경화는 그려도 인물에 취약한 화가들이 많다. 그러나 미술은 처음부터 인물묘사로 시작하여 인물묘사로 끝난다. 그 만큼 인물묘사는 피부의 색이나 인체의 형체가 변화무쌍하여 시시각각 방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미 청남대 대통령 역사기록화로 선정된 300호 규모의 《잘 살아보세》가 영구 소장되어 있기도 하고 풍경, 정물, 인물작품이 무엇이든 거침이 없다.


개막식에는 성악가의 축가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잠시 캔버스 위의 하모니를 일언하고자 한다. 누구나 음악콘서트에 간 적이 있을 것이다. 무대 위의 많은 악기들을 색으로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맑은 소리를 내는 플루트(flute)은 청색으로, 크고 육중한 첼로(cello)는 흑색으로, 남성적인 트럼펫(trumpet)은 초록색으로, 여성적인 바이올린(violin)은 핑크색으로, 클라리넷(clalinet)은 계곡의 물소리로, 바람과 같은 드럼(drum)소리는 옥색으로, 천둥소리와 같은 심벌(cymbal)은 노란색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악기가 서로 한 음으로 들리는 것을 하모니라고 한다. 우주의 법칙에서는 협화(協和)라고 한다. 서로 다른 성질의 사물이 하나로 융합하는 것을 말한다. 악기를 색으로 보았을 때 무대는 캔버스가 된다. 미술에서도 마찬가지로 캔버스 위에 많은 색을 악기로 대입해 보면 음악과 같은 색의 하모니가 이루어지게 된다. 캔버스 위에서도 하모니가 배제되고는 예술로서의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말하자면, 음악연주에서 하나의 악기가 엉뚱한 소리를 내면 연주를 망가트리게 되고, 캔버스 위의 색채 구성에 있어서도 어느 색 하나가 이질감을 주면 미술작품은 실패작이 되고 만다.
이러한 협화의 법칙에 의한 우주의 진리를 묘사하고 있는 김순옥의 작품에서는 살아 있는 생명의 소리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태양의 빛을 받아 동질적인 자연의 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얼마나 열심히 활동을 해 왔는지 화려한 편력(遍歷)을 알 수 있다. 이번 전람회 역시 또 하나의 편력으로써 화려하게 성공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