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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母性)을 통해 바라본 자연과 사물 황정자
글 : 김순옥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자연이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갖게 된 것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모성애 덕분이었다.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를 ‘지옥의 신’ 하데스가 납치하자 슬픔에 빠진 그녀의 분노의 눈물로 땅이 타들어가 곡식이 말라죽기 시작했다. 이에 제우스는 하데스에게 페르세포네를 포기하도록 종용했으나 하데스는 간계를 내어 일년중 4분의 1은 반드시 지옥에서 살도록 하였다. 이후 페르세포네가 지옥으로 내려갈 때면 데메테르가 흘리는 눈물로 식물이 말라죽어 겨울이 되고 다시 페르세포네가 돌아오면 만물은 생기를 되찾아 봄이 되었다.
어머니의 감성으로 대상 속에 묻힌 아름다움을 발견
같은 것을 그려낸다 하더라도 작가가 보는 관점에 따라 대상은 얼마든지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는 작가가 대상에 공감해내는 과정이 단순한 재연이 아니라 회화적 표현을 통해 재창조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는 작가가 살아온 삶의 여정과 철학이 응축되어 나타나기 마련이다.
황정자 화백의 작품에서는 넉넉하고 따스한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사실 황화백은 많은 여류화가들이 그러하듯 결혼과 출산, 육아 등 여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기간이 있었지만 가정과 작가활동을 훌륭하게 겸하여 왔다. 여성적 삶과 예술가적 삶의 병행이 결코 공백이라든가 힘의 분산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 기간이 작가에게는 자연과 사물에 대한 원숙한 포용력을 키우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대지가 그 안의 모든 생명체에 미추(美醜)를 가리지 않고 포용해내며 꽃과 열매를 맺어내듯 황정자 화백은 놀라운 예지와 직관력으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자연과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어느 시골길마다 널려져 있을 듯한 평범한 민들레꽃, 도라지꽃, 코스모스가 황정자 화백의 눈과 손을 거치면 계절의 신비로움을 노래하는 찬양이 되고 흔히 볼 수 있는 생선, 꽃게, 옥수수, 밤 등도 모성의 눈을 거치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훌륭한 정물의 대상이 되곤 한다.
“언젠가부터 일상적인 생활의 리듬에서 소홀하기 쉽고 무심코 스친 모든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작품 활동이 저에게 준 선물이라고나 할까요?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자연과 소통하다 보면 감추어진 아름다움에 스스로 설복 당하게 됩니다.”
순도 높은 색채감각 통해 미적 카타르시스 추구
황정자 화백의 조형세계는 고유한 색채 감각에 가장 큰 동력을 부여받는다. 캔버스 속 대상들이 실제 보다도 더 리얼하게 다가오는 것도 전체와의 조화를 유지하면서도 선명한 대비를 통해 미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색채 감각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계절의 변화를 담는 그녀의 손길을 따라가다 보면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 여인의 설레는 마음을 만나게 된다.
화사한 연둣빛 색채로 치장하는 봄의 산하(山河),
신록의 신선함이 깨끗하게 느껴지는 성하(盛夏)의 서정,
중간색조의 화려하고 우아함 만큼이나 안정을 주는 가을의 성숙함,
순수의 색조로 공간을 풍부하게 채워주는 겨울의 고요함!
- 작가노트 중에서
“자연의 매력은 다양함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이롭지요. 계절의 바뀜이 바람에 실려 느껴질 때면 어김없이 화구를 챙겨듭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치를 여러 색으로 담아 삶의 공간 속에 옮겨 놓고, 짙은 커피향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사랑합니다. 제 인생도 이처럼 계절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겠지요.”
인생과 계절과 대지를 사랑하는 황정자 화백의 작품은 차가운 겨울마저도 포근히 감싸듯 따뜻하고 진한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