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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화) 바람-엉컹퀴 161.6x97cm 캔버스에 혼합재료
생명을 예찬하는 자연주의 작가 이강화
글: 김순옥
이강화 화백의 자연은 인생을 닮아 있다. 그저 인간적 바램으로는 자연이 한없이 아름답고 활기차기만 바라겠지만 그의 자연은 인생의 희노애락을 옮겨 놓은 듯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처절하게 아름답다. 숱한 시인ㆍ예술가들의 찬미 대상이 되어왔던 눈부신 아름다움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이름 없는 들꽃에 숨겨진 인생을 닮은 생명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드러내주고 있다.
“화실 문을 열고 나가면 담장 아래에서부터 골목 끝까지 강아지풀이며 잡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해마다 그 자리에 피어 자라고 있었을 풀들로 인해 뜻밖의 생명을 느끼게 되고, 시선은 점점 어느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버려진 곳에 이르게 됩니다. 화려함에 가려 늘 배경으로만 머물렀던 이런 소재들로 인해 제 일상은 또 다른 생명력을 키워나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친화적인 자유로운 소재
이강화 화백은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 자연과 조형의 이분법을 거부한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관은 언제부터인지 인간과 대립되는 객체로서의 자연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신이 인간과 자연을 각각 별개로 창조했다는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의 영향이라고 사료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관의 변화는 예술세계에도 반영되어 자연은 그 자체의 생명력과 동기를 상실한 죽어 있는 정물이 되거나 인간적 시각으로 가공ㆍ묘사되는 객체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이강화 화백의 자연은 다르다. 기껏해야 화병 속의 꽃이 되거나 멋진 풍경이 되어 인간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역할에 머물게 되는 ‘죽은 자연’이 아니라 생명과 희망과 삶의 역사를 지닌 ‘살아 있는 자연’을 그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에는 ‘생명’, ‘약속’, ‘꿈’, ‘인연’, ‘설렘’ 과 같은 의인화된 표제가 따라 붙는 경우가 많다.
“자연을 향한 시선이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바로 나이를 실감하게 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내 놀이감에 지나지 않았던 강아지풀이며 들꽃, 엉겅퀴들이 더 이상 내 기억 속에 방치될 수 없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작품의 소재와 재료의 절묘한 일치감에서 명백히 제 모습을 보인다.
나무판, 드럼통 뚜껑, 자루가 떨어져 나간 녹슨 부삽, 문짝만 남아 있는 찌그러진 고가구 서랍, 오랜 세월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 왔을 화목한 밥상 등이 그가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 역할을 한다. 하기는 꽃병 속의 화려한 장미꽃이나 정원 속의 깔끔하게 다듬어진 화초가 아닌 담벼락이나 축축한 늪 속에 피어난 잡풀을 담기에는 순백의 캔버스 보다 세월이 묻어나 질감 있는 재료가 훨씬 자연스러우리라.
정신적 회귀와 진실을 일깨워 주는 작품들
이강화 화백의 작품은 가공적 자연이 아닌 일상을 다루고 있기에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푸근함을 느낀다. 유화 물감을 사용한 서양화에 속하면서도 여백의 미를 중시한 구도 면에서 동양적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색채 역시 화려한 원색 보다는 자연색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자연의 재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무심한 자연에 숨겨져 있는 순간적 아름다움을 포착해내는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섬세한 관찰력을 보여준다. 소박함이 화려함보다 훨씬 큰 미덕일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우리가 작가를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일종의 문명비판적인 요소를 읽을 수 있다.
나의 속내처럼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길게 늘어선 이름 모를 잡초들…
마음 주고 기다리면 다시 다 돌아올 것 같은 자연 앞에 서면,
더 이상 고개 숙이지 않아도 좋을 당당함이 조금씩 몸에 밴 것을 느낀다.
그들을 절절하게 사랑하고 원 없이 표현하였음으로.
그리고 그런 그들이 내게로 와 온점이 되었음으로.
- 작가노트 중에서 -
그의 작품은 사라져가는 풍경과 정서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간직하고 있다.
시인ㆍ묵객들의 예술적 교류와 낯선 사람에 대한 배려가 오가던 푸근한 장소가 콘크리트 아파트 속에 사라져가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져 작품 활동의 원동력을 형성한다. 자연의 본질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그의 작품은 정신적 회귀와 진실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