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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갑 Min, Kyoung-Kap

‌산 30호 장지에 분채

‌‌함축과 내포의 미를 창출한 가장 한국적인 작가 민 경 갑

글: 김순옥

`우리 시대의 작가’라는 글을 쓰자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작가는‘유산 민경갑 화백’이었다.
수많은 작가 중에 왜 그가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랐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가 가장 한국적인 화가이며 고령인 지금도 새로운 한국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세계화를 이룬 진정 앞서가는 작가이다.
민경갑 화백은 수십년 변하지 않으면서 쉼 없이 변했다.
한국의 미를 화폭에 담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추구하는 미술세계는 시대를 달리하며 스스로의 틀을 깼다.
그의 작품은 자연과의 “조화”에서 “공존”으로, “무속주의”에서 “無의 세계”로 변모하였다.
경이로운 자연을 탐구하며 찬양한 그의 작품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무속주의 작품은 토속적인 샤머니즘을 찾아 인간의 본질을 얼속에서 승화하고 있다.
무의 세계 작품은 필요 없는 것은 빼고 정수를 찾는 노장의 사상이 담겨 있다.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비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여 비운다는 뜻이다.
군더더기 없이 과감하게 생략된 화면의 분할과 기하학적인 평면구도로 완성된 그의 독창적인 화법이야말로 ‘유산 민경갑 화백’을 여타 작가와 구분지어 이 시대의 대가로 우뚝 솟게 한 핵심적인 요소이다.
아무것도 없이‘비어두는 공간’이라는 전통적인 여백 개념 대신 함축되어 내포된 평면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여백의 미’를 우리에게 준다.
‘차있음’과 ‘비어있음’의 이분법적인 구분 대신에 이 둘을 동일한 공간에 농축시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물을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아도 평면 이미지 자체에서 산과 계곡과 폭포, 나무와 바위를 볼 수 있고 시각적인 후련함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러한‘滿’과 ‘空 ’의 변증법이 그의 작품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림 밖의 모든 공간도‘여백의 미’라고 하면서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는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속전속결 사고방식을 염려한다.
“자연의 섭리에 맞춰 숙련과 단련, 연습과 경험에 의한 능력을 쌓아야 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세월의 경지를 무시한 채 단숨에 작품을 완성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벼를 속까지 익히지 않고 겉에만 익히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공을 들이지 않은 작품은 정신세계가 결여된 기계예술처럼 그림에서 맛이 나지 않습니다.”
최근 급진적인 한국화 작가들이 서양화 재료인 캔버스에 아크릴이나 심지어는 유화물감까지 사용하여 장르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평단의 일부에서는‘그들의 실험정신까지 나무랄 수는 없겠지만 그 또한 한국화로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그는 이런 점에 대해 명료하게 답했다.
“재료 속에 담겨있는 정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한국인의 정신이 담긴 작품이라면 캔버스에 오일을 사용하였건 화선지에 수묵을 사용하였건 관계없이 그것이 바로 한국화입니다.”
그의 설명이 아니라도 인사동 근처 그의 화실을 한 번 보면‘아! 이게 한국화구나’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전통적인 수묵담채나 진채의 구분을 뛰어넘어 수묵화의 장점을 바탕으로 특유한 질감과 감성적인 기법을 기조로 한 작품들이 신비한 동양의 숨결을 담아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강렬한 색채의 아름다운 작품들, 얇은 종이위에 버티고 선 웅장한 대자연, 농축된 산과 물과 나무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의 작품은 그대로 해탈의 경지를 가르치는 동양철학이다.
꽃이 피고 지듯 자연의 섭리를 담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까지 그려내고 있다.
무위자연(無爲自然). 민경갑 화백의 자연을 닮은 붓은 그래서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농익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