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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경원대(162.2x130.3cm oil on canvas 2010)
자연 속에서 그리움을 일깨우는 화가 노광
글: 김순옥(예술학 박사)
시가, 그림이, 음악이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있는 그대로의 자연’ 만 하겠는가. 동서고금의 수많은 천재 예술가들이 나름의 기법과 창조적 아이디어로 자연을 예찬해 왔지만 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뿐, 자연이라는 무궁무진한 美의 보고(寶庫)는 인간에게 영원한 처녀림(處女林)이다. 하여 ‘위대한 자연’ 앞에 초라해지는 것은 과학문명 만이 아니다. 고귀한 인간정신의 결정체인 예술마저도 자신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원초적 美에 대한 노스탤지어, 그리움을 찾아 헤매는 보헤미안
그런 의미에서 노광 화백은 자연이라는 스승의 충실한 제자이다. 자연을 충실히 재현해 냄으로써 그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추종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려낸다 하더라도 순간순간 포착되는 수많은 영상 중 어느 모습을 선택해 담느냐는 순전히 작가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노광 화백은 문명 속에서 잊혀져 가는 자연의 원초적 아름다움을 화폭에 기록하는 것에서 작가적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속도가 지배하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참 여유가 없습니다. 그 빠른 속도 속엔 그리움이나 아쉬움이 고일 여지가 없지요. 문명은 직선이고 자연은 곡선입니다. 도시적 문명이 가져 온 각박함 속에서 잊혀져 가는 자연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움…. 그것이 제가 화폭 속에 담고 싶은 제 작품의 모티브입니다.”
그 모습을 담기 위해 노광 화백은 화구와 캔버스를 둘러메고 마치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조선팔도를 누비고 다녔듯 압록강에서 제주도까지 흥정계곡, 오봉산, 명지계곡, 주왕산, 갈골마을, 하의도, 정선과 화음동 계곡, 섬진강과 낙동강 등 우리 산하 곳곳과 중앙아시아, 러시아, 네팔, 인도 등 어디라도 달려가 장인정신을 토해내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된 조화로운 작품들
“신영복 교수의 표현대로 여행은 나 자신으로 돌아옴(歸)이며 타인에 대한 겸손한 이해입니다. 마치 보헤미안처럼 세계 구석구석을 해매이며 대자연 속에서 모든 인간이 하나가 됨을 느낍니다. 결국 자연은 우리 인간이 나오고 돌아가야 될 모태와 같은 것이지요.”
노광 화백의 자연은 인간의 삶을 배제한 객체가 아니라 인간을 하나의 구성 성분으로 포함하고 있는 ‘사람 내음’ 이 물씬 풍기는 자연이다. 그가 묘사하는 산과 강과 나무와 풀들 사이에는 소 끌고 가는 사람, 멱 감는 아이들, 다 허물어져 가는 다리와 시골집, 심지어는 사람들이 다니는 시골길이나 눈길 발자국 등 삶의 흔적들이 풍경과 충돌하지 않은 채 자연스레 녹아져 있다. 그가 그린 자연에서 유독 그리움, 평화, 휴식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그의 조형세계가 ‘보이는 것’ 에 충실하면서도 이에 머물지 않고 불가시적인 감성을 창출해내는데 성공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해주고 있다. 냉정한 관찰을 통해 성취한 포근한 안식. 노광 화백의 작품세계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세류에 휩쓸리지 않는 뚝심의 외길
그는 인물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후 풍경화로 조형 세계를 넓혔다. 70년대 이후 비구상이 유행이 되고 화단의 주류로 자리 잡아 국전을 비롯한 공모전에서도 각광이 그 쪽으로 쏠리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외길로 걸어 온 그 만의 뚝심은 인정해 줄만 하다. 그러한 우직스런 고집이 없었다면 ‘사라져가는 자연을 기록하는 사관(史官)’ 이라는 직책을 감히 자임하기 어려웠으리라.
“다시 태어난 데도 그림 그리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천상 그림쟁이인데요.”
그의 작품에는 진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
사람 좋은 그의 멋쩍은 웃음을 보며 인왕산 아래 통인동에 위치한 화실을 나온 필자는 마치 고향에 다녀 온 듯 마음이 푸근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밖은 도시의 소음과 먼지가 가득했지만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그림 속 어느 눈 덮인 시골길 걷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