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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Kim, Hyung-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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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적인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동양의 신비
해리(海里) 김형근

‌글: 김순옥


예술 활동의 근원이 된 통영앞바다
바다마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김형근 화백의 호 해리(海里)는 김화백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이다. 그는 작곡가 윤이상, 시인 유치환, 김춘수, 작가 박경리 등 걸출한 예술인을 배출한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고향과 어린 시절은 예술 활동의 근원적인 모티브이며 에너지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제게 고향 통영은 한국적인 이미지와 기억의 원형을 이루는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통영부채, 통영갓, 장석, 나전칠기 등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물건들은 아기자기하면서 자자한 아름다움이 뭔지를 제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곧잘 어린 시절과 고향 통영의 기억들이 소재로 등장한다. 민속품을 소재로 한 그의 사실주의 정물화에는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이 정돈된 모습으로 기품 있게 그려져 있다. 국전 대통령상에 빛나는‘과녁’도 실은 통영 부근 남망산에 위치한 활터의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한다. ‘영원의 장’을 비롯하여 유토피아를 몽환적으로 형상화해낸 일련의 작품들에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통영의 바다와 들과 하늘이 녹아들어 있다. 그의 정물에서 볼 수 있는 고고하면서도 단아한 기품에는 유학자 집안의 정결함이, 이국적 취향의 여인상 시리즈에는 바다를 접하고 있는 지역 특유의 열정과 호방함이 묻어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만난 은백색
고향 못지않게 김 화백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친 것은 젊은 시절 겪었던 사후세계에 관한 기억이다. 그는 30을 전후한 나이에 의사의 오진으로 사망 판정을 받고 시체실로 끌려갔던 독특한 경험을 갖고 있다. 순간 그는 화가로서의 직업의식이 발동, 사후세계의 색채를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고 한다.
“죽어서 본 세상의 색깔은 온통 은백색이었습니다. 그 속에 사람들이나 모든 사물들이 흰색으로 보이더군요. 보고 싶던 친구들도 다 만나고 마음에 항상 담아두었던 마산 앞바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왜 그 동안 세상을 그토록 여유 없이 살았던가 하는 생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경험을 한 후 김형근 화백은 조형세계에 있어서나 예술 철학에 있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투명하고 영롱한 은백색은 그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표현해주고 있다. 죽음 바로 직전에까지 갔다 왔다는 기억은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일희일비하던 그의 삶의 태도를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조형세계에 있어서도 현실적 존재성을 뛰어넘어 시공간을 초월한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를 명상을 통해 신비롭게 표현하는데 보다 집중하게끔 만들었다.


영원의 회귀를 재현한 작품들
그렇기 때문에 김형근 화백은 사물의 겉모습 보다는 그 사물의 본질을, 찰나적 이미지의 포착ㆍ재생보다는 사물 속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생명성, 영원성의 꿈을 담아 표현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여인상들은 다양한 의상과 액세서리,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동일한 인물과 표정, 동일한 측면 각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여인은 특정 시기의 특정한 매력을 지닌 구체적인 여인이라기보다는 우리 마음속에 꿈꾸어 왔던 누이이며 어머니이자 연인이고 마돈나이다. 그렇기에 김형근 화백의 여인상은 패션의 변화와 관계없이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 보편적인 미의식을 담고 있다. 이러한 미의 원초성, 영원성에 대한 추구가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난 것은 일련의 ‘영원의 장’시리즈를 비롯한 작품들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요단강가에서 보았을 듯한, 혹은 아득한 어린 시절 아무 욕심도 없고 세상 풍파에 물들지 않았던 순수했던 마음으로 상상했을 법한 유토피아적인 이미지를 몽환적ㆍ신비적인 색채로 그려내고 있다. 그가 이들 작품을 통해 재현해내려 했던 이상향은 미당 서정주가 『신라초』를 통해 그리고자 했던 자연과 인간이 일체화된 상상의 고향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16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거머쥔 집념의 예술가이다.
미국 뉴저지시가 매년 4월 한 달을 ‘김형근 화가의 달’로 정해 기념할 정도로 외국 평단에 의해 ‘동양의 신비’로 일컬어지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해리 (海里) 김형근 화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