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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성 짙은 자연주의 한국화가 김충식
글: 김순옥
그가 그리는 것은 마음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는 다양하다. 이름 없는 들꽃이나 쓸모없는 엉겅퀴에서부터 눈 덮인 산자락의 한가로운 마을, 정자와 연못이 어우러진 한적한 시골 풍경, 온갖 꽃으로 봄 치장한 화사한 들판, 고기잡이 배 두어 척 떠있는 어촌마을에 이르기까지 우리 땅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보이는 것 모두가 그의 화폭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는 것만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기쁠 때 보는 꽃과 슬플 때 보는 풀 한포기의 느낌이 다르고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의 정서와 해질 녘 감상이 다르듯 흔하디 흔한 소재들도 각기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의 느낌, 자연을 사랑하고 삶은 관조하는 마음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까지 넣고 비록 말은 못하지만 그 소재들이 말하고자 하는 말없는 다변까지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충식 화백의 작품을 보노라면 아름답다는 느낌 외에 편안하고 차분해지는 상태가 된다.
“생각과 생활과 표현의 일치를 꿈꾸었던 조상들의 통합적 예술정신을 지금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를 늘 고민합니다. 서양의 물질문명 앞에 독특한 우리만의 뿌리를 키울 토양을 확보해야한다는 것이죠. 우리의 문화, 우리의 정서, 우리의 맛을 찾아내어 그것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햐얀 눈과 하얀 느낌
김충식 화백은 소재도 가리지 않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4계절을 모두 담고 있다’는 겨울 풍경이 유독 많다. 그가 여백을 사랑하고 하얀 공간이 주는 느낌, 텅 빈 공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특별히 사랑해서이다. 그가 살아가면서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는 경기도 광주 방도리의 겨울 모습은 그래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당신과 함께 하는 휴일의 축제’ ‘정월의 아름다운 외출’ ·‘추억을 부르는 정경’‘만설의 방도리’‘시와 눈이 있는 마을에서 만남’‘쉼이 담아 둔 풍경’ 등은 모두 눈이 주인공이다. 추운 겨울 날 내리는 차가운 눈이지만 그의 그림 속에서 눈은 다양한 상상을 가능케 하는 매개물로 포근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넉넉하다. 슬프고 답답하고 괴로운 일상들도 그의 눈을 만나면 기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감정의 자국이 되고 만다.
“눈이 오는 날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앞에 두고 많은 생각들을 만들어 봅니다. 행복한 생각들과 멋진 꿈들은 눈 속 깊은 곳에 담아두고 언제든지 꺼내보고 넣어 주는 그런 여백의 창고와 공간을 만드는 거지요.”
김충식 화백에게 한 겨울 눈 내리는 날은 가슴 따뜻한 날이고 사랑과 행복과 새 희망을 담아내는 날이며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날이다.
“한국화에서의 여백정신은 우리 정서가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된 여유와 여지의 공간이 조형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여백에 사물의 마음을 그립니다. 하얀 눈이야말로 더없이 훌륭한 여백의 조형언어이고 그를 통해 무한한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자연 속에는 철학이 있다.
“언젠가 스케치 여행에서 너무나 커다란 자연 앞에 앉아 많은 생각에 잠긴 적이 있었습니다. 몇 겁을 지나고 또 몇 겁을 거쳐 갈 자연의 시간 앞에 서 보니 인간의 시간은 그야말로 한줌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른 작가보다 더 좋은 그림을 그리고 역사에 남기위한 작품 활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그때 그는 버릴 수 있었다고 했다. 물론 그것은 인간이라면, 예술성을 추구하는 화가라면 누구나 가져 볼 수 있는 당연한 생각일 터. 하지만 무한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헛된 꿈을 접기로 했단다. 그릴 수 있을 때 까지 마음대로 그릴 뿐 달리 해석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본 것을 그리고 느낀 대로 그리고 보지 않았어도 마음이 동하면 감흥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열심히 작업을 하기로 했고 지금껏 그렇게 하고 있다. 무소유의 감흥이랄까. 때문에 그의 그림 속에는 철학이 있으며 대중들도 그런 그의 작품을 사랑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