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LIST
PREV NEXT
곽석손 Kwak, Suk-Son

축제 -장지에 분채 100호

‌‌시공을 넘나드는 나비그림의 화가 곽 석 손

글: 김순옥 ‌

몰아(沒我)와 합일(合一)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고 했던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꽃 속을 날아다니며 유희하던 장자가 꿈에서 깨어났다. 장자는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서 장자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장자적 세계관에서 꿈과 현실, 아(我)와 피(彼)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꽃과 나비와 인간은 서로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합일(合一)된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곽석손 화백의 그림을 보다 보면 어느 덧 우리 자신이 나비가 되어 꽃 속으로 날아 들어가는 듯한 몰아(沒我)의 경지를 느끼게 된다. 비슷한 크기의 꽃잎들이 빽빽하게 반복되고 있는 평면적 구성은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화폭의 절대적 크기에 제한되지 않는 무한한 공간을 내포한다. 이를 통해 온통 세상이 꽃으로 충만해 있고 나비 역시 꽃의 일부가 된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이다.


보는 이들과의 행복한 공감
그렇다면 곽석손 화백은 왜 나비를 그리게 된 걸까? 나비를 통해서 그가 표출하고 싶었던 느낌은 어떤 것이었을까?
“꽃을 찾는 나비의 마음을 상상하면 설렘과 흥분을 느낍니다. 그 행복한 순간을 화폭에 담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지난 오월에서 유월까지 경향갤러리에서는 곽석손 화백의 초대개인전이 열렸었다. 한 해 동안 곽 화백이 들인 공이 달디 단 열매가 되어 넓은 전시장을 가득 채워 신비한 향을 발하고 있었다.
초대된 사람들 하나하나의 표정에서 이미 형형색색의 나비가 되어 꽃 속을 헤매고 있는 무아지경의 행복감이 읽혀졌다.
“사실 너무 오랫동안 집착했던 공격적인 공간 구축이나 대립적인 색면(色面)의 무게감은 실험의 흔적이 너무 짙었어요. 실험의 흔적으로 얼룩진 충돌의 공간에 갇혀 자연을 그리고자 하면서도 자연의 세계를 마음 속 깊이 느끼지 못했죠. 내 안에서 조차 정화되지 못한 채 거듭되는 반복만으로 상대방의 미적인 정감을 강요하는 작업에서 이제는 스스로 벗어나고자 합니다.”
보는 이들과의 공감... 그것은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곽석손 화백이 오랜 구도(求道)와 탁마(琢磨)의 과정을 거쳐 돌아 온 결론이었다.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무거운 짐을 내리고 그리는 이나 보는 이들이나 볕 좋은 봄날 나들이 가듯 마음과 마음의 소통을 이루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것은 타협이 아니었다. 대가(大家)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이요, 단순함의 미학이었다.


힘겨운 실험과정 속에 탄생한 작품들
그의 작품 배경이 되는 꽃이 초기에는 여러 가지 화려한 색으로 표현되었지만 최근에는 같은 계열의 색상으로 통일감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그 위를 날아가는 나비의 색이 더욱 돋보이고 바탕에 깔려있는 평면위의 나비가 입체적으로 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곽석손 화백은 가장 전통적인 재료를 통해 가장 현대적인 표현을 시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제는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그만의 조형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한 없이 고민하고 수 없이 생각 합니다” 곽석손 화백은 창작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작품의 깊이는 들인 공과 비례합니다. 공이 적게 들어간 작품은 깊이감이 없고 보는 이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얼마 전 개인전을 끝마쳤으니 지금은 좀 쉬어도 되련만 가락동 그의 작업실은 오늘도 쉼이 없다.
누군가 ‘창작의 고통’이라 했던가. 나비가 될 때 누에가 허물을 벗는 고통처럼 그의 고통 속에 탄생되는 나비는 오늘도 화려한 빛으로 꽃나무 숲을 날아오르고 있다.